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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중 제16주일] 어떻게 주님 앞에서
    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2. 7. 16. 09:17

    Georg Friedrich Stettner, Christus im Hause der Martha

     

     

     

    루카 10,38-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2).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몫”이라는 단어예요.
    “몫”이라는 건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거예요.
    어떤 전체를 할당한 거예요. 분할한 거죠.
    결국 이 “몫”이라는 건 각자 택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거죠.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마르타가 잘못한 거라고 그냥 마르타에게 비판적인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통합적인 사고로 말씀하신 겁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루카 10,38)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르타야,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한 거야.
    이건 마리아가 택한 몫이고 마리아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거야.
    마르타, 너는 아무래도 손님 접대하는 것에 탈렌트가 있고 
    마리아는 보니까 듣고 경청하고 기도하고 복음 전하는 것에 탈렌트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신 거죠.

    그렇다고 우리 가운데 ‘나는 말씀 듣는 게 어려우니 마르타를 선택해야겠다’ 하면서 한쪽으로만 치우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둘 다 알았으니까 우리는 마르타일 수도 있고 마리아일 수가 있습니다. 
    마르타적인 모습이 필요할 땐 마르타가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적인 모습이 필요할 땐 가차 없이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점점 우리에게 마리아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요즘 도무지 경청을 하지 않아요.
    도무지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주님 앞에서 마르타적인 선택이 최고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원문 출처: 차동엽 신부, 2019년 7월 21일 복음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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