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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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 성장하는 사람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2. 12. 3. 08:09
마태 3,1-1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우리는 회개를 할 때 우리 사고방식을 뜯어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이 생각에 뒤따른 행위만을 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방식을 뜯어고쳐야 되는데 사고방식은 그대로인 거죠. 그럼 생각을 회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뭐냐, ‘깨어있음’이에요. 일상적인 예로 TV를 보다가도 맨날 내가 아는 것, 친숙한 것만 보려 하지 말고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나에게 조금 낯선 인문학, 자연, 과학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 본다면 내 생각이, 내 지평이 넓어지고 지금까지 지녀온 사고의 틀이 바뀌기도 하겠죠. 그것도 일종의 회개입니다. 매일 회개하는 사람, 이 사람이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은총의 대림 시기, 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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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일] 하늘에서 잔치가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2. 9. 10. 07:09
루카 15,1-32 또는 15,1-10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0). 저도 사목을 하면서 제일 신나는 성사가 세례성사입니다. 혼배성사보다도요. ‘여기서도 한 사람이 태어나는구나! 이 사람도 회개했구나, 새 사람이 되는구나!’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만 기뻐하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늘에서도 내려다보면서 누구 한 사람 회개하면 하늘에서도 잔치가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알아듣게 하기 위해 과장법을 쓰시더라도 없는 얘기를 하지는 않으십니다. 진짜 세례식 날 회개하는 날 하늘 나라에서는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회개하는 게 얼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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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회개는 즉각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2. 3. 19. 10:03
루카 13,1-9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루카 13,8). 오늘 등장한 무화과나무의 운명은 이미 잘렸어야 했습니다. 이미 끝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포토 재배인이 땅 주인에게 부탁을 해서 유예를 받았지요. 우리도 지금 그런 심정으로 이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요? 시간이 널널하다고 생각하지 말 일입니다. 당장 회개할 것은 당장 회개해야 우리도 무화과나무처럼 연명할 수 있는 겁니다. 회개는 즉각성입니다. 원문 출처: 차동엽 신부, 2019년 3월 24일 복음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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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일] 자신에게로 돌려야하는 단어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2. 2. 26. 09:29
루카 6,39-4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42). 남의 눈에 ‘티가 있다’ 말하는 이가 정작 자신의 눈에는 들보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과장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과장법을 쓰시는 이유는, 가르침의 인상을 강력하게 남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유명하지요. 오늘 우리 이 사회의 병폐는 뭔가요? 남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데는 다 선수며 프로면서, 자기 성찰, 자기 인정, 자기 반성을 하는 데는 다들 미숙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뭘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 자신이 정말로 자기 성찰이 능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시즌이 곧 다가옵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앞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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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복음 앞에는 갈 수 있습니다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1. 1. 24. 09:44
마르 1,14-20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드디어 하느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힘든 시절이란 뭔가요, 하느님의 침묵입니다. 이는 지금도 사실 반복되고 있죠.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며 가끔씩 드는 생각 중 하나가 ‘하느님께서 지금 내 삶에 침묵하고 계셔…’라는 느낌일 겁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개입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느님의 개입은 무조건 좋은 거예요. 지금은. 왜 좋은 거냐,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마지막으로 유보해 놓으셨어요. 그니까 마지막 때 하시는 개입은 인정사정없습니다. 새로운 기회도 없어요. 그러나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실 때는 비록 고통을 통해 오시더라도, 시련을 통해 오시더라도 좋은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