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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세 가지 차원의 ‘열린다’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1. 9. 5. 07:07
마르 7,31-37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마르 7,37).
군중의 이 고백은 무얼 뜻할까요.
예수님께서 “‘에파타!’곧 ‘열려라!’ 하신 말씀”(마르 7,34 참조)이 군중에게 성취된 겁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뿐만 아니라, 군중의 눈도 뜨인 겁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이런 말을 못 했어요.
우리 가운데도 성당을 그렇게 다니면서 이런 고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여러분은, 여러분 입술에서 이 말이 금세 나오나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쉽게 나오기 어려워요.
우리도 열려야 합니다.
그럼 ‘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저는 세 가지 차원으로 열린다고 봐요.
차원이 열리는 겁니다.
우선 우리가 ‘본다’ 그러면서도 못 보는 이유가 뭐냐면,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거예요.
그 속에 있는 것을 못 보는 거예요.
통찰력이 열리지 않은 거죠.
그래서 껍데기만, 많은 사람들이 껍데기만 보고 삽니다.
이 깊이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다음 열려야 하는 것은, 높은 곳에서 보는 눈이 열려야 돼요.
그러면 멀리 보입니다.
우리는 다 또 근시안이에요.
가까이 있는 것만 보이지 쪼끔 멀리 나가 있는 건 못 보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가 보는 만큼만 얘기하니 안 보이는 것과 똑같은 거죠.
마지막으로 넓게 보지 못합니다.
시야가 내 관심거리에만 좁혀져 있으니까
분명 똑같은 것을 보고,
분명 매일 보며 사는데도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옆집 이웃도 안 보고 사는 사람도 있고,
누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관심 없이
오로지 나,
그리고 내 관심사만 보는 겁니다.
모두 다 지금 잘못된 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에요.
사람들이 왜 소통이 안될까요?
아내와 남편이 왜 소통이 안될까요?
부모와 자녀가 왜 소통이 안될까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왜 소통이 안될까요?
보는 깊이가 다르고
보는 높이가 다르고
보는 폭이 다르니까 소통이 안 되는 겁니다.
보는 깊이가 똑같으면, 뒤에 숨어 있는 걸 볼 줄 알면 소통이 되죠.
“너도 보이지? 나도 보여!”
멀리 볼 줄 알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도 됩니다.
“이게 네 미래야.”
지금 고생길을 간다면,
지금 너무 쉬운 길을 가려한다면
각각의 미래가 어떨지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폭넓게 보인다는 건요,
우리는 “덥다 덥다” 그럴 때, 더 더운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춥다 춥다” 그럴 때, 더 추운 사람이 있다는 것도요.
“힘들다 힘들다” 그럴 때 더 힘들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 역시도요.
오늘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에파타!라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실현되어 진정 보는 눈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원문 출처: 차동엽 신부, 2018년 9월 9일 복음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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