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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통일 기원 미사] 가능한 숫자
    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0. 6. 25. 07:35

     

     

     

    마태 18,19ㄴ-22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전통적으로 유다 랍비들은 용서를 세 번까지 해주어야 한다 하였죠.

    사실 이 세 번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번 용서도 어려운데, 두 번, 세 번까지라뇨, 가혹합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용서에 대한 질문을 드리며, 좀 더 세게 나가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예수님의 답변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마태 18,22)였습니다. 

     

    여기 “일흔일곱 번”이라고 쓰여있는 대목의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일흔’이라는 숫자와 ‘일곱’이 나란히 표기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흔일곱’이 아니라, ‘일흔’, 그리고 ‘일곱’이라는 거예요.

    이 ‘그리고’라는 데에 더하기가 들어간다면 ‘일흔일곱’,

    곱하기가 들어간다면 ‘사백구십’이 되겠죠.

    어떤 숫자가 됐던지 불가능한 숫자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토록 부담스럽고 불가능한 숫자를 요구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거꾸로 알아들을 때 그 뜻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원수를 보고 계신 게 아니라 나를 보고 계세요.

    미움으로 마음이 황폐화되고 초토화되어가는 나를 말입니다.

    미움을 가지면, 미워하는 대상이 망가지는 게 아니라 미워하는 자신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저는요, 누구를 미워하다 화병 걸려 죽었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누구한테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죽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어요.

    그러니깐 결국 용서를 못한 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겁니다.

    이걸 예수님께서 아시니까 우리에게 용서라는 해결책을 주신 거죠.

    그러고 두 번째는, 그래야지 또 서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오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이자 6,25를 맞아

    특별히 파티마 성모님을 떠올려 봅니다.

    파티마 성모님께서는 공산당을 위해,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주셨고,

    우리 한국교회 교우들은 그에 따라 매년 임진각에서 통일기원 미사와 기도회를 봉헌했죠.

    청년시절 저도 한번 동참한 적이 있었으니, 얼마나 오랜 시간 이어져온 기도입니까.

    성모님께서 자녀들에게 “기도해라” 하시며 보여주신 업적 가운데 큰 두 가지가 1,2차 세계대전의 종식이었듯,

    남북통일도 꼭 우리에게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원문 출처: 차동엽 신부, 2017년 6월 25일 복음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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