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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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평화가 나와 함께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2. 7. 2. 07:43
루카 10,1-12.17-20 또는 10,1-9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루카 10,5-6). 여러분께 제가 책으로, 강의로 많이 말씀드렸죠. 남을 칭찬하는 것은 나를 칭찬하는 격이 됩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우리 뇌는 언어에 대해서는 그닥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무슨 말이냐면, 이게 주어가 ‘너’인지 ‘나’인지를 안 따져요. 귀에 들어온 말에 대해서만 반응합니다. 그니까 우리가 남에게 ‘아이고, 잘했다~ 잘했다~ 잘했다~’ 그러면 우리 뇌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가 잘한 것처럼 착각해요. 기분이 좋죠. 그런데 ‘이런, 못된 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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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한몸체로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2. 6. 4. 07:45
요한 20,19-23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1) 이 “평화”는 기운입니다. 기운. 주님은 기운이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주 기운으로 오세요. 그것이 바로 성령인 겁니다. 성령을 매개로 오시는 거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평화”를 말씀하실 때 이미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평화와 성령, 한몸체로 오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정말 정서적으로 힘들 때 주님 안에 머물러 앉아있으면 차분해짐을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이 성령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원문 출처: 차동엽 신부, 2019년 6월 9일 복음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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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1. 5. 23. 07:07
요한 20,19-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와 함께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왜 ‘용서’를 말씀하셨을까요? 평화를 누리는 조건이 ‘용서’기 때문입니다. ‘참 평화’는 하느님에게서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이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을 떠났기 때문이거든요. 하느님을 등졌기 때문이거든요.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오면 이 평화를 누릴 수가 있는데, 어떻게 됐던지 간에 죄는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창세기 아담이 ‘따먹지 말라’는 금단의 열매를 먹고 나서 보니 자기 몸이 부끄러웠어요. 그담에 아담이 한 일이 뭔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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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기원 미사] 가능한 숫자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0. 6. 25. 07:35
마태 18,19ㄴ-22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전통적으로 유다 랍비들은 용서를 세 번까지 해주어야 한다 하였죠. 사실 이 세 번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번 용서도 어려운데, 두 번, 세 번까지라뇨, 가혹합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용서에 대한 질문을 드리며, 좀 더 세게 나가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예수님의 답변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마태 18,22)였습니다. 여기 “일흔일곱 번”이라고 쓰여있는 대목의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일흔’이라는 숫자와 ‘일곱’이 나란히 표기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흔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