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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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1. 5. 23. 07:07
요한 20,19-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와 함께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왜 ‘용서’를 말씀하셨을까요? 평화를 누리는 조건이 ‘용서’기 때문입니다. ‘참 평화’는 하느님에게서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이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을 떠났기 때문이거든요. 하느님을 등졌기 때문이거든요.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오면 이 평화를 누릴 수가 있는데, 어떻게 됐던지 간에 죄는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창세기 아담이 ‘따먹지 말라’는 금단의 열매를 먹고 나서 보니 자기 몸이 부끄러웠어요. 그담에 아담이 한 일이 뭔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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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일] 너희도 해봐!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0. 9. 13. 08:59
마태 18,21-35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오늘 예수님 말씀 가르침의 핵심은 뭘까요? 각각 만 탈렌트와 백 데나리온을 빚진 이 중에, 우리는 누구의 입장입니까? 바로 만 탈렌트를 이미 탕감받은 이의 처지가 우리입니다! 만 탈렌트 탕감은, ‘무한 용서’와도 같습니다. 그렇담 우리한테 잘못한 이는 ‘무한 잘못’을 했나요? 겨우 백 데나리온 어치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백 데나리온 어치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우리가 딱 그만큼만 탕감해주면 될 것을 그걸 못해가지고, ‘내가 죽으면 죽었지. 용서는 절대 못해!’ 하며 사는 게 우리 모습이죠.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를 얼마나 큰 잘못을 그리고 얼마나 큰 빚을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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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기원 미사] 가능한 숫자복음묵상 - Lectio Divina 2020. 6. 25. 07:35
마태 18,19ㄴ-22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전통적으로 유다 랍비들은 용서를 세 번까지 해주어야 한다 하였죠. 사실 이 세 번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번 용서도 어려운데, 두 번, 세 번까지라뇨, 가혹합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용서에 대한 질문을 드리며, 좀 더 세게 나가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예수님의 답변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마태 18,22)였습니다. 여기 “일흔일곱 번”이라고 쓰여있는 대목의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일흔’이라는 숫자와 ‘일곱’이 나란히 표기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흔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