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신부님은 골키퍼 by 쿠로 벨라스케스미디어세상 - Futurorum 2020. 4. 18. 18:18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면서도
열린 'B급 갬성' 소유자라면,
이 영화, 나쁘지 않다.
신부님은 골키퍼(영문제목은 Holy Goalie).
고급 호텔로 개조될 위기에 처한 작은 수도원에 어느 날 살바도르 신부가 새로이 부임돼 온다.
망해가는 수도원에 부임해 오는 인물인 만큼, 그의 전적은 화려하다.
아프리카 선교사제로서 이태석 신부님 못잖은 헌신적 사랑으로 그곳 아이들과 하나 되어 살아가던 그.
이 신부님과 다소 다른 점이라면, 자신의 본소속과 너무 거침없는 패밀리십을 지녔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마을을 장악한 게릴라 군인들 협박을 면하기 위해
무려(!) 바티칸 인터넷 은행을 해킹하여 돈을 내어준다는 식이다.
(아.. 충격과 신박의 공존.... 😱)
이 불온한 사제에게 다행히 파면은 면하되, 목숨같던 소임이 그 즉시 금지되는 한편
촌구석 수도원에로 좌천이 내려진다.
답답한 수도원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한 존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수도원 책임자 무니야 신부다.
제자들은 물론 신자들에게조차 한치의 틈도 허락지 않는 '정석주의자'와
아프리카 대자연만큼이나 자유로운 수도생활 속에서 형식 따위 아랑곳하지 않던 '날것'의 만남.
신입은 터줏대감에게 제안한다.
소속 신학생들을 데리고 성직자 축구대회에 나가자고.
대회 우승으로 수도원 명예를 드높이면 폐쇄를 막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말이다.
덧붙여 자신도 다시 아프리카행을 꿈꿔 볼 수 있고 말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가톨릭', '코미디', '스포츠'란
삼박자를 다 갖춘 유래 없는 실험작(?)인 것.
물론 허무맹랑한 시놉과 몇몇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도 있는 건 사실이다.
(두어 장면에선 정말 헉! 스러웠는데, 다행히 예전에 유튜버 코미꼬(COMICO) 영상을 몇 개 본 적이 있더래서.. 그때 장착된 스페인 리얼 문화 패치 덕에 극복해낼 수 있었다는....;;)
자국 스페인에서도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것 같고,
아무리 후한 후기라도 별점 반타작이 최고점이니 결과적으론 망작이 더 맞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뭔지 모를 애정에는
첫째, 소재에 대한 부러움. 곧 차용된 가톨릭이 아니라 전면에 내세운 가톨릭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일런스'(Silence, 2016)나 '두 교황'(The Two Popes, 2019) 같은 명작도 반가운 요즘이지만, 사실 이런 소재를 지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싶다. 대사도 무척 디테일하다. (예를 들어 살바도르 신부가 경기 중인 아이들에게 특급작전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시하자 무니야 신부가 "지금은 사순시기일세"라고 받아친다든지.. ㅋㅋ)
그러기에 쏟아지는 미디어 속 가톨릭 가뭄의 단비마냥 고맙기만 한 것.
둘째, 인간미. 앞서 언급한 '두 교황'이 거룩한 아버지들의 입담이라면, 이 영화에는 크게 '활동수도회'와 '관상수도회'로 대표되는 두 사제의 묘한 대립각 아래, 폐쇄 기로에 놓인 수도원, 형제단의 조용한 뒷거래, 성소에 고민하는 신학생 등 좀 더 현실적인 성직자 이면을 다루려 한 점이 눈에 띈다. 그 표현력이 다소 아쉽긴 하나 "홀리함"(holy)만을 고집하길 벗어나고자 시도했단 점만으로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병맛. 전성기 개콘이나 코빅도 심드렁하게 여기던 나였는데, 몇몇 대목은 정말 소리 내서 웃음. 쿠키영상마저 '감독이 미쳤구나' 싶을 만큼 고퀄 뮤비에다 가사 무엇? 특히나 신스틸러라 할 수 있는 복음주의교회 그라비엘 목사 연기가 압권!!
아래는 나름 뽑아본 영화의 베스트 씬 3 (이후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1
티격태격 막장으로 치닫던 두 사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 장면. 왠지 모르게 살짝 눈물남.. 결국 하느님은 거룩한 수도원 안에도, 세상 끝 이방인들 삶 속에도, 곧 궁극적으로 ‘아니 계신 곳’이 없는 분이라는 진리를 말해 주는 듯한.
#2
바티칸으로 가는 최종관문, 교구 신학대학팀과의 시합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신학생들.
센스 터지는 응원구호 보소. 웃겨 죽는 줄.. 😂
#3
떠나는 신학생 시몬과 무니야 신부와의 대화. 이 장면에서 무니야 신부 대사가 참 좋았다. 쿨하게 보내주는 동료 신학생들도 멋짐.
개인적으로 시몬이 다시 돌아오겠지 싶었는데, 정말 구급차 타고 떠나버림;; 더 현실적이면서도 진실성 있게 느껴지더라는.
+
이에 더해 흔들리는 시몬의 마음을 바로 알아채고 직접 마주할 것을 권하던 살바도르 사제와의 장면도 좋았다.
거룩한 부활 맞이 넷플릭스를 뒤지고 뒤지다 무심코 본 ‘신부님은 골키퍼’.
내 영혼에 경건함 한 스푼 더 추가하려다 폭망 하고 말았지만..
이렇듯 반짝반짝 빛나는 몇몇 대목들 덕에 실험작 -> 망작으로 끝나버린 이 영화가 나에게는 또 다른 띵작.
'미디어세상 - Futurorum'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고 베를린에서 - 넷플릭스 드라마 (0) 2020.06.21 메리 해피 왓에버 - 시트콤 (0) 2020.04.30